일상/사생활

세입자의 사정2

shineblast 2009. 9. 16. 02:26
세입자 얘기 나온김에 한명 더 쓰고 싶네요.
이분은 10평짜리 상가에 들어왔던 분인데.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셨어요.
노가다 용어로 내장 목수죠.
일꾼도 있고. 세와도 있고. 뭣보다 실력도 있구요.
(가게 직접 꾸미는거 보고 마감이 너무 깔끔해서 좀 놀랬어요.)

근데 사람이 너무 좋은 까닭에 수금할때 애를 먹더군요.
그래서 일꾼들 일당도 못주고. 
결국엔 가게세도 반년넘게 연체가 됐죠.
이때 좀 깼어요. 일꾼인지 세와인지 밤에 술먹고 와서.
가게 유리창 부수고 도망치는 일도 잦았고.
어머니도 돈을 달라 그래서 저하고 한참싸웠죠.

결국엔 저하고 어머니가 그 사람 쪼다 보니까.
나중에는 어디 대학로가서 짜장면집 할테니까.
잠깐만 기다리면 밀린 가게세와 수리비 다 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몇달 기다려 줬는데. 그 인간 그냥 날랐어요.
근데 어머니가 별반응이 없더라구요.
사정을 들어보니...

부산서부터 그 이를 따라다닌 동거녀가 하나 있는데.
나이 마흔에 여기저기 붙어다니다 겨우 성실한 사람 만났다고.
그 이를 죽자사자 쫒아다니는거랍니다.
그 모습이 흡사 젊은 시절 아이 하나 등에 메고.
아버지 따라 여기저기 옮겨살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그래서 도망갔어도 밉지가 않데요. 

그 남자 술을 좋아해서.
일이 안풀려도 술마시고. 일이 잘되도 술마시고.
심심해도 술마시고. 푹 자고 싶다고 술마시고.
암튼 술을 너무 퍼마셔서 여자한테 손찌검도 잦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여자,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사정풀고 많이 울었데요.
그때마다 미련떨지 말고 도망가라고.
동병상련인지 어머니도 그리 말하고 매번 같이 울어줬데요.

그게 크게 작용했나봐요.
돈떼먹고 도망가도 '그냥 날랐어' 이런거 보니. 
평소같았으면 분을 못참고 돈돈 노래부르며. 
나 붙잡고 별의별 난리로 내 숨통을 끊으려 했을텐데.
근데 서로 비슷한 고통을 삭이며. 한도 덜으신건지.
마치 사우나 열탕에서 몸풀고 나온듯한. 
허심탄회한 표정과 목소리.

그걸로 "그냥 날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