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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blast's blog
살인광시대 - 문제는 숫자다 본문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본질을 왜곡시켜버리면 그 사람의 본질이나 성정이 어떻든간에 그냥 다수가 정한대로 그대로 치부되어 버리죠. 그렇다고 지적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다수의 의식을 귀속시킬수는 없는것이고. 그래서 중요한게 프레젠테이션. 생각한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기 쉽게 똑바로 전달하는 능력. 요즘 느끼는건 이게 가장 중요한거 같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자신이 특정부분에서 평균이하일지도 모른다걸 인정하지 않으려해요. 그래서 아는체하는 경우가 많고. 뭔가 아는것 같아보이는 사람도 끌어내려 자기이하 수준으로 폄하하려하죠. 살인광시대를 보면 주인공 베르두가 많은 여성들을 죽이지만 그보다 더한 국가간 또는 사회의 폭력에 대해선 사람들이 눈을 감는다고 냉소 어린 이야기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원리 자체가 불합리하고 불평등하고 비정한데, 우리는 우리가 범죄자라 명한 사람들을 심판함으로서 우리자신은 그래도 정의롭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은 기지개를 펴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하지 않을지. 살인광 시대를 보면 그런 프레젠테이션의 영역에서 눈부시다고 생각될정도로 많은걸 생각할수 있게 해줍니다.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불편한 얘기들을 정말 마법처럼 풀어냅니다. 살인광시대가 희극적인 부분이 덜하긴 하지만 채플린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지는건 그런 마법같은 전달력에서 채플린이 느껴지기 때문일겁니다.
영화에서 베르두가 말한 숫자가 문제가 된다는것은 단순히 사람을 죽인 숫자말고도. 옳고 그름이 항상 다수에 의해서 정해져야 하고. 그런 다수들이 자본을 우선시해서 지적능력을 소비한다면 얼마나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나는지. 그런 중우사회에 대한 비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죄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베르두의 변명을 듣다보면 오해를 할 부분도 있는데. 원죄라는건 단순히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얘기하는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또는 도덕적 결함을 지닌체 살수밖에 없는 사회에 귀속된 인간의 운명을 얘기한것입니다. 따라서 결함을 가진것은 당신들이나 나 나 다를게 없다. 단지 내가 눈에 띄어서 사형을 당하는것 뿐이다. 어찌보면 사회에서의 처세도 양상은 이와 비슷합니다. 생계를 꾸려나가려면 눈치도 봐야 되겠고. 본것도 못본체, 못들은체 외면해야 할 상황도 많고. 그렇다고 용기를 내보려 해도 그것이 대안이 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베르두가 말한 원죄는 이것을 얘기한것인데. 한마디로 이전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도 이전에 볼수없었던 만큼의 인류의 대안은 아니라는겁니다. 누구나 노력한만큼 그 대가를 얻을수 있는것이 아닌. 누구나 착하고 성실하다고 인권을 보장받을수 있는것이 아닌. 단지 돈에 의해 정의가 만들어지고 착취와 부채에 의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 그런 사회에 대한 비관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얼핏 자신의 삶을 이끌어 왔던 윤리관을 벗어던질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베르두의 변명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것은 그것이 아닌 우리는 과연 치를 떨며 파괴했던 이전 사회의 문제점을 과연 떨쳐버렸는가. 과연 이것이 대다수를 위한 사회인가 인류 전체에 대한 전진인가. 거기에 대한 반성과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식을 일깨우는것입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에 아직도 인정과 화합을 이루려는 마음이 있다면 거기에 대한 호소로도 들릴수 있겠구요.
PS.채플린의 말기작품들을 근래에 와서 보게됐는데. 예전에 채플린의 말기작품들에 대한 글을 읽었을때 유성영화시대에 들어와서 채플린 작품들이 대중과 멀어지면서 결국 채플린이 '몰락'했다는 평을 읽어었습니다.(그게 오래전 미국의 작가가 쓴 채플린 평전이었음) 특히 살인광 시대의 경우 굉장한 비난을 받았던 영화로 알고 있었는데. 직접 접해보니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채플린의 전성기때 보다 훨씬 느낄게 많은 영화더군요. 채플린은 단순히 유명한 사람이기 보다 위대하다. 라는 말. 그 말의 의미가 정말 많이 와닿았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의 작품이 남아서 지금의 제가 접할수 있는게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 어거스트 러쉬에서도 나온 대사이긴 하지만. 살다가 뭐가 뭔지 모르는 일이 닥치면 그때는 예술속으로 도망가서 답을 찾아야 할때가 있다고 하죠. 채플린 영화는 그속에서 충분한 위로를 찾을수 있는 정말 몇안되는 황금같은 영화라는거. 이번에 정말 많이 느꼈습니다.